겹쳐보는 역사 · 한국사 · 근대

정미의병과 서울 진공 작전

1907~1908 — 해산 군인이 합류한 의병 항쟁과 13도 창의군의 서울 진공 작전

1907년 일제는 헤이그 특사 파견을 구실로 고종을 강제로 물러나게 하고 정미7조약을 맺은 뒤 대한 제국 군대를 해산했습니다. 해산된 군인이 의병에 들어오면서 의병은 무기와 전술을 갖춘 부대로 바뀌었고 싸움은 전국으로 번졌습니다. 그해 말 각지 의병이 힘을 모아 이인영을 총대장, 허위를 군사장으로 13도 창의군을 꾸리고 서울의 각국 영사관에 의병을 교전 단체로 인정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1908년 초 허위가 이끈 선발대가 동대문 밖까지 다가갔지만 본대가 제때 모이지 못하고 일본군에 밀려 서울 진공 작전은 실패했습니다. 이후 의병은 호남을 중심으로 싸웠고 일제는 1909년 남한 대토벌 작전으로 이를 짓눌렀으며 남은 의병은 만주·연해주로 옮겨 가 독립군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시험 포인트

을미의병(유생 중심, 단발령) → 을사의병(신돌석 같은 평민 의병장) → 정미의병(해산 군인 합류, 13도 창의군) 순서로 나누세요. 사료에 군대 해산·이인영·허위·동대문 밖·각국 영사관이 보이면 정미의병과 서울 진공 작전입니다.

핵심 단서

앞뒤 사건

같은 무렵 세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