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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신분제의 동요

17~19세기 — 납속·공명첩, 족보 매입으로 양반 증가, 공노비 해방

양난 이후 정부는 재정을 메우려고 곡식을 바치면 신분을 올려 주거나 벼슬 이름만 적은 공명첩을 팔았습니다. 경제력을 키운 부농과 상인은 납속이나 족보 매입·위조로 양반이 되어 양반 수가 크게 늘고 상민·노비가 줄었습니다. 서얼은 상소 운동으로 관직 진출 제한을 풀어 정조 때 규장각 검서관에 등용되었고 중인도 소청 운동을 벌였습니다. 노비는 군역 부담자를 늘리려는 정부 정책으로 줄어 1801년(순조) 공노비 6만여 명이 해방되었고 노비제는 1886년 세습 금지를 거쳐 1894년 갑오개혁으로 법적으로 폐지되었습니다.

시험 포인트

납속·공명첩·족보 매입(양반 증가), 서얼 통청 운동(규장각 검서관), 공노비 해방(1801, 순조) → 신분제 폐지(1894, 갑오개혁)까지가 한 흐름입니다.

핵심 단서

앞뒤 사건

같은 무렵 세계사